여가부 “7년 새 경단녀 72만명 감소”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적극 해소해야 문제의 근원 해결
방유경 이수현 기자 admin@example.com
11/22/2024 11:37:52 PM 등록 | 수정 12/1/2024 1:00:33 AM
뉴스
경제
“경력단절기간 동안 사회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된 것 같았어요”(홍정아·32세)
“경력단절 전의 보수를 받으면서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한수연·32세)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6일 발표에서 “경력단절여성 규모가 72만명 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여성의 경력단절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등으로 아이, 배우자, 부모 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 여성들이 돌봄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였다.
5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가사를 이유로 경제 활동을 그만둔 여성의 수치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호소
아직도 경력단절로 좌절하는 여성이 많으며, 이들은 사회에 나서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21개월 자녀를 양육 중인 홍정아(32)씨는 결혼으로 인한 이직과 이후 육아휴직으로 총 2번의 경력단절을 겪었다. 경력단절기간에 대해 홍 씨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업 준비를 했음에도 사회에서 쓸모없어진 부품이 된 것 같았다”며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 후 이직한 직장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이었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출산 휴직과 육아 휴직을 합산해 사용했음에도 자녀는 5개월 간난아이였다.
그는 결국 여러 사유로 복직하지 못했다. 자녀가 15개월 무렵 결혼 전 일하던 ‘간호인력 취업교육센터’에서 재취업을 제안 받고 근무 중이다. 홍씨는 “7년 전 간호인력 취업교육센터에서 일하던 당시와 코로나19 이후를 비교할 때 경력단절여성이 줄었단 것을 체감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는 “공공기관 외에 경력단절 전의 보수를 받으면서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실질적 취업과 연계되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안나현(경제 18) 학우는 강사활동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이모의 경력단절을 목격했다. 안 학우의 이모는 결혼 전 약 10년 동안 전공을 살려 수학강사로 근무해 전문성을 지녔지만, 출산 및 육아로 업무 공백이 길고, 나이가 많아 채용되지 못했다. 안 학우는 “이모와 같은 경력단절여성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절실하다”며 “여성들이 사회적 이유로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여성 경력단절이 반복되는 이유
오래 전부터 사회 문제로 지적돼 여성의 경력단절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무엇이 여성의 경력을 끊어내는 것일까.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사회·구조적 성차별에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엔 여성이 가사와 돌봄노동을 맡아야 한단 뿌리 깊은 차별과 여성의 능력을 하대하는 기업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고, 승진과정에서의 성차별을 뜻하는 ‘유리천장’을 견고히 한다. 올해 OECD 국가별 남녀 임금격차조사에서 한국은 31.5%로 1위였다. 해당 조사가 이뤄진 1992년부터 약 30년 동안 한국은 1위를 놓친 적 없다.
경력단절여성은 노동시장 복귀의 어려움을 겪는다. 노동시장은 1·2차로 구분된다. 1차 노동시장은 고학력 여성들이 진출하는 정규직(공기업, 민간기업)을 뜻한다. 2차 노동시장은 1차 시장에 비해 별도의 교육 없이 입·퇴사가 자유로우나 는 저임금·비정규직 직종으로 복지가 보장되지 않는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강의를 맡은 이화영 교수는 “고학력 여성들이 가사 노동 등에 의해 경력이 단절되면 1차 노동시장에서 더 이상의 경력을 쌓지 못한다”며 “아이를 낳은 후 저임금 2차 노동시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돼 노동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과 여성의 경력단절을 사적 문제로 치부하는 ‘국가 가부장제’도 근본적 원인이다. 여성정책은 여성이 주체가 돼야 함에도 일 가정 양립정책은 가사와 양육의 주체를 여성으로 은밀하게 명시한다. 이 교수는 “아이를 낳고 길러 한 사회의 생산적 주체로 만드는 일은 공적인 일”이라며 “정부 여성 관리자들을 만나 여전히 출산에서 오는 승진 불이익이 팽배한 것을 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통계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경력단절여성의 경력단절사유는 육아·결혼준비·임신 및 출산 순이었다. 2019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가사·돌봄노동 전체시간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두 배 길었으며,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짧아진 것에 반해 돌봄노동 시간이 늘었다. 각 가정 내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이 존재하며 여성이 주된 가사와 돌봄노동의 부담을 겪고 있음을 뜻한다. 경력단절여성 김경희(34)씨는 “부부가 야근이 잦은 직종으로 주변에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 어렵고 조부모의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퇴사했다”고 말했다.
경력단절기간을 평가절하하는 기업과 사회의 시각도 문제다. 한국 사회는 일하지 못한 기간을 ‘집에서 오래 쉬었다’며 무능력 상태가 지속됐다고 평가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는 “경력이 단절된 기간을 두고 노동시장에선 일하기 어렵다고 단정짓는다”며 “결국 대부분의 사업주는 경력단절여성에게 능력이 없다며, 쉽게 채용하고 해고가 가능한 저임금 비정규직 고용 형태라도 만족하라고 강요한다”고 말했다.
여성 경력단절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그렇다면 경력단절여성과 관련한 현행 제도들은 실효성이 있을까. 여성의 경력단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육아휴직 제도는 현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1년 이하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반드시 허용해야 하고,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동일한 업무나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근로자를 복귀시켜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홍씨는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임원으로부터 “왜 곧 임신할 신혼인 직원을 뽑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임신 및 출산할 경우, 기업들은 ‘능력 부족·근무 평점·회사 사정’ 등의 이유를 들며 재계약을 회피한다. 이윤창출이 최우선에 둔 기업은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김용화 교수는 “남성중심인 기업의 조직문화는 법으로 보장된 여성근로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는다”며 “조직문화가 바뀌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고용개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련단절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비정규직에 편중돼있다. 여성가족부 ‘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경력단절여성이 취업 후 적응할 수 있도록 3개월 간의 근무 경험을 제공하는 ‘새일여성인턴’을 운영 중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인턴종료자의 취업률은 약 96%이지만 1년간 고용을 유지한 비율은 54%였다. 재취업 후 이탈되지 않도록 하는 장기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단기 인턴과 같은 비정규직 일자리는 경력단절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경력단절여성들이 2차노동시장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여성의 노동이 낮게 평가되는 악습을 해소하지 못한다. 경력단절여성은 임금과 승진에서 소외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또다시 경력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정부는 경력단절여성이 1차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도록 도와야 한다.
정부 사회의 역할 크다
사회는 경력단절여성의 아픔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정부는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하고, 지속적 능력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일·가정양립정책’ 지원에서 나아가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적극 해소해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다. 여성의 돌봄부담은 결국 남성중심 사회구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성평등한 기업 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성별 임금격차와 유리천장을 근절해야 한다.
[2022-06-1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