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노트북에 갇혀 산 대학 20학번 학생들
[기획-코로나가 앗아간 캠퍼스 청춘…‘중고 새내기’ 20학번을 만나다] ①
이혜원 기자 admin@example.com
11/23/2024 12:07:30 AM 등록 | 수정 11/23/2024 12:08:3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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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대학 20학번 유모씨는 스스로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희생자라고 자조한다.
고3 수험생 시절 상상했던 희망 가득한 대학 신입생의 로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학 이후 대학생으로서의 그의 하루하루는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그는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에도 아침 8시 40분이 돼서야 일어난다. 침대를 정리하고 세면을 한후 단정하게 윗 옷을 차려입은 뒤 그가 향한 곳은 캠퍼스가 아닌 방, 책상 앞이다. 노트북을 켠 뒤 이캠퍼스(e-campus)에 올라온 링크를 클릭하자 실시간 화상 수업 창이 열리고 화면 속엔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들이 가득하다. 마스크를 쓴 사람, 눈만 보이는 사람, 눈·코·입이 다 보이지만 처음 보는 듯한 얼굴들…누가 동기고 누가 선배인지, 아는 얼굴 몇을 제외하곤 분별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고 끝난다. 선배들이 얘기했던 대학 축제와 서클활동 등 캠퍼스 라이프도 코로나19 팬데믹에 묻혀버렸다.
꽃 피는 봄 3월, 대학 캠퍼스는 펜데믹에 점령당했다.
그곳에 캠퍼스 청춘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점자 키보드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 학생과 실습이 생명인 예체능 학생들은 하루하루 한숨으로 보내고 있다. 3평 남짓한 기숙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모습은 더욱 처량하다.
대학 주변 사회도 젊은 청춘이 발산하는 생동감이 사라지고, 상권의 붕괴 등으로 무거운 침묵이 짓누르고 있다. 코로나가 앗아 간 것은 캠퍼스 청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중한 그 무엇도 함께 가져가 버린 것 같다.
■ 입학 2년차…교문을 밟지 못한 학생들
“대학만 가면 원하는 만큼 놀 수 있어.”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이 입시를 거치며 수없이 들어왔을 이야기다. 축제, 동아리, 대강의실 수업 등 대학에서 누릴 수 있던 당연한 것들을 입학한 지 1년이 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못 한 사람들이 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코로나19가 시작된 20학번이다.
20학번은 대학 생활의 로망을 꿈꿨다.
유씨는 “수업 전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 강의실에서 마시며 수업을 듣는” 장면을, S대 20학번 전모씨는 “공강 시간에 동기들과 유명한 학식 메뉴도 먹어보고, 함께 학교 근처 식당에서 식사도 하는” 로망을 가졌다. C대 20학번 김모씨에게는 “학과 엠티(MT)도 가고 선배와 술자리나 밥 약속을 하며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로망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전공책을 옆구리에 끼고 강의실까지 뛰어가는 것, 미팅하며 다른 학교 학생들과 놀아보는 것, 학과 답사에 참여하는 것 등 이들에게는 대학에 입학한 후 이루고 싶은 수많은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20학번은 학교생활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채 ‘미개봉 중고’, ‘중고 새내기’가 됐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인공 5인방은 의대 99학번 동기들이다. 이들은 1학년 엠티에서 처음 만나 밴드 동아리를 결성하고 노래방도 다니며 새내기로써 많은 것을 즐겼다. 왁자지껄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누구보다 위하는 이들의 우정은 20년이 넘게 지속된다.
하지만 우리 20학번은 엠티는 고사하고 1년 동안 동기와 친밀감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코로나19로 대학의 모든 행사는 취소됐고, 수업마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그마한 컴퓨터 화면 속에서 실시간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동기들의 얼굴을 익혔다. 20학번에게 동기는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무형의 존재’다.
■ 20학번, 나홀로 대학에 던져지다
코로나19가 시작된 후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대학은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캠퍼스 내 시설은 거의 이용 금지됐다. 대면이 필수적인 일부 수업만 강의실을 여러 개 사용한다.
대학에는 초·중·고등학생 때처럼 챙겨주는 담임 선생님도, 가정통신문도 없다. 성인이니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만 한다. 20학번은 학교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교수님, 대학 선배, 동기보다 코로나19를 먼저 맞닥뜨렸다.
S대 20학번 전씨는 “학교생활 중 선배, 동기들에게 편하게 물어볼 기회가 없다”며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 녹화 강의로 진행되기 때문에 교수님께 따로 질문을 남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취재팀이 20학번 대학생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4.6%가 ‘선후배 및 동기와의 교류 부재’를 캠퍼스 라이프 중 가장 만족하지 못하는 항목으로 골랐다. 76.9%는 ‘축제 등 교내 행사 참여 불가’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주현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교육은 단순히 수업 내용을 전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며 유대감·소속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며 “이런 것들이 1학년 때부터 사라진 20학번은 타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20학번은 선배로부터 수업이나 대외활동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며 “단체 생활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 및 정서적인 안정감이 있을 텐데 모든 활동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이런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비대면 수업이 만들어낸 교육 공백
낮아진 수업의 질과 의욕 저하로 대학생들은 길을 잃었다.
C대 20학번 김씨는 대학에서 가장 불편한 점을 비대면 수업으로 꼽았다. 그는 “실시간 강의는 쉽게 적응된 편이지만 녹화 강의는 너무 적응하기 어렵다”며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고, 질의응답이 바로바로 안 되니 강의를 반복적으로 들어야 해서 힘들다”고 털어놨다.
H대 기계공학과에 다니는 20학번 오모씨는 “400만 원짜리 인터넷 강의를 듣는 기분”dl라며 대학생활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교수와 학생 모두 줌(ZOOM) 같은 실시간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처음 다루다 보니 수업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20학번은 인터넷 연결 상태로 인해 수업이 중간에 끊기는 등 집중할 수 없는 수업 환경에 노출됐다.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들으면 가족 전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발생했다.
온라인 수업의 집중도를 물은 설문조사에서 40.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13.5%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20학번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 장기화가 사회성 발달이나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큰 지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며 “특히 한국 사회처럼 고등학교 시절을 입시 위주로 보내는 경우 그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 “어떤 대책이 있는지 모르겠어요”....교육부·학교 대책 마련 필요
교육부와 대학은 코로나19로 인한 20학번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교육부는 펜데믹에 들어서면서 대학에 비대면 수업과 관련한 지원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권역별 대학원격교육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LMS(온라인 학습관리 시스템) 등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직접 (비대면 수업에 대한) 대책을 수립한다기보다는 대학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분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며 “비대면 수업과 관련한 사항은 대학의 여건에 따라 대학이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대학에 권한이 있다. 교육부가 비대면 수업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건 없다”고 밝혔다.
건국대학교 학사팀 관계자에 따르면 대학 측은 서버 증설, 유연한 학점제도 신설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S대 20학번 전씨는 “교육부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지난 1년 동안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H대학 20학번 유씨는 “현재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학교 측에 물어보면 교육부에 문의하라고 하고, 교육부에 물어보면 학교 측에 문의하라고 한다”며 “학생들에게 지원 체계를 명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익명의 20학번 학생은 K대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대학은 지식 전달만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소속감 부재의 문제, 외로움, 의미가 없다는 느낌 등 우울감을 많이 느꼈다”고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학생들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 대학 측에서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이주현 건국대 교수는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고충을 파악하기 위해 의견 수렴을 거쳐 그 의견을 바탕으로 팬데믹 시대에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며 “워크숍 개최 등 학생들에게 학교의 직접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2021-06-13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