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대학가…코로나 터널에 한숨 가득한 대학 상권
[기획-코로나가 앗아간 캠퍼스 청춘…‘중고 새내기’ 20학번을 만나다] ③
이혜원 기자 admin@example.com
11/23/2024 12:22:15 AM 등록 | 수정 11/29/2024 12:15:09 AM
기획
사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푸르른 젊음을 잃은 대학가는 마치 유령도시로 변한 것 같다. 대학 사회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는 대학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신입생의 설렘과 기대는 사라졌다. 학생을 잃은 대학가에는 한숨만 가득했다.
■ 벼랑 끝 내몰린 소상공인…휘청이는 대학 상권
봄이 찾아오고 새학기가 시작했지만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세대는 올해 1학기 수업방식에 대해 비대면 수업을 원칙으로 “실험‧실습‧실기 교과목은 제한적 대면 수업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서강대는 “기본적으로 비대면 수업, 일부는 대면 수업을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대면 수업 인원을 40명 내외로 제한한다.
대학가 상인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찾은 신촌 먹자골목은 활기를 잃고 적막했다. 손님맞이로 분주할 점심시간에도 불이 켜진 가게는 한적했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가게에는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화여대 정문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코로나19 여파로 방문 손님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주문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입생과 복학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신촌 자취촌에는 입주자를 찾는 안내문만이 전봇대에 따닥따닥 붙어있다. 신촌 인근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방값을 내려도 학생이 없다. 빚만 쌓여서 이제는 폐업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연세대 정문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현재 공실률은 30% 정도다. 건물 당 1~2개 방은 비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찾은 건국대 주변 상권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학생들로 붐빌 12시 대학가. 지금은 학교 직원과 자취생만이 드문드문 보였다. 건국대 주변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임대료라도 건지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매출은 작년의 10분의 1로 줄었다”며 “주변에 몇 가게는 결국 못 버티고 (상권을) 떠났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은 손실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김씨는 받은 재난지원금을 밀린 월세 갚는데 전부 썼다고 답했다.
주변 인쇄소도 상황은 비슷했다. 수업과 학회가 비대면으로 전환되자 대량 인쇄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줄었다. 코로나19 유행 전 새로 바꾼 인쇄기는 어느새 헌 것이 되어가고 있다.
20년간 건국대 인근에서 인쇄소를 운영한 한모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정부의 지원도 소용이 없다”며 “코로나19가 끝나야 해결 된다”고 허탈하게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학생들이 안 오는데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 1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소상공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월평균매출액은 3,583만원에서 2,655만원으로 25.9%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 사업 전환이나 휴·폐업을 고려한다는 소상공인은 15.4%로 코로나19 이전 4.9%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캠퍼스 라이프를 되찾고 싶은 20, 21학번 학생들만큼 대학 상권의 자영업자들은 캠퍼스 문이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 학생들도 사회·경제적 피해...온라인 수업 속 표류하는 학생들
학생들도 사회·경제적·문화적·정서적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
학생들은 단절된 관계, 좁아진 생활 반경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학생들은 홀로 고통을 견디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20대의 우울감은 크게 증가했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수행한 ‘2021년 1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우울 점수는 6.7점으로 30대와 함께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20대 10명 중 3명이 우울 고위험군에 속했다. 20대의 자살생각도 지난해 3월 조사에서는 9.66%였으나 12월 조사에서는 13.43%로 늘었다. 실제로 청년층의 우울증 진료 건수도 크게 늘었다.
학습 손실도 심각하다.
비대면 수업의 장기화는 사회·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낳을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학습 손실의 경제적 영향’ 연구 보고서에서 초·중·고 연령대 학생들이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손실 때문에 3%가량 소득이 낮아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같은 보고서에서 OECD는 우리나라에서 1년 중 2/3 학습결손 시 발생한 경제적 손실을 3조 달러(3,387조원)로 예상했다. 대학생이라고 다르진 않다. 코로나19가 발행한 장기 할부 명세서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전달될 예정이다.
■ 코로나 시대, 대학의 사회적 책임
교문 폐쇄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1년 넘게 변한 것 하나 없는 상황 속 학생들은 닫힌 교문 틈 사이로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교육부와 대학이 책임을 지고 실효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한 정신 상담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상담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또래 학생들이 상담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홍보가 되지 않아 센터의 존재를 모르는 학생도 있다.
대학은 학생들이 상담센터를 활발히 이용하도록 홍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학교 게시판을 통해 홍보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학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 의료 시설과 인력으로 촘촘한 심리적 방역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정성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물리 방역’도 중요하지만 학생을 위한 ‘심리 방역’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 가지 않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니 매일이 방학 같은 느낌이 들기 쉽다”며 “대학은 학생들이 상담센터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업의 형태를 바꾸는 방식으로 학습손실을 막는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5월 건국대 화학과는 실험 키트를 학생들의 집으로 배송해 ‘재택 실험실습’을 시도했다. 서울시립대 신소재공학과는 수강생 40명을 20명씩 A반, B반으로 나눠 격주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 공백을 완전히 메꿀 수는 없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고민한 결과다.
하지현 건국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학습 손실을 막기 위해 새로운 수업의 형태를 고려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수업에서 상호작용을 하고, 토론 수업이 짧게라도 진행되는 플립드러닝이 진행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플립드러닝(Flipped-Learning)은 온라인을 통한 선행학습 뒤 교수와 토론식 강의를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 코로나 펜데믹 캠퍼스 문제 해결의 열쇠는..."대학 문을 열라"
취재팀이 만난 학생, 상인, 교수는 문제 해결의 단초를 ‘교문 개방’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이 교내 방역 체계를 수립한 후 닫힌 교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닫힌 교문이 개방되면 대학 상권이 살아나 상인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우울증과 열악한 조건으로부터 학생들을 구조하고 학생들은 관계성을 회복할 것이다. 열린 교문을 통해 학생들은 전공 지식 외에도 중요한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대학교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배우며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배우는 공간이다.
전문가는 방역을 위한 대면수업 중단은 부작용이 큰 만큼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사회적 거리 두기 체계 개편을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학교를 닫으면 방역 측면에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효과는 매우 적은 반면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닫을 때 인적자원 개발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정부가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학교 문을 개방하면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방역과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창의적인 방법은 시도하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 없다. 교육부와 대학에 새로운 대학을 상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이다.
지난 5월 4일 서울대는 집단감염 발생 가능성을 무릅쓰고 2학기부터 대다수 수업을 대면 방식으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방역 당국과 협의해 대면 수업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신속분자 진단검사를 대학 구성원 전체로 확대해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5월 14일 ‘전국 학교 학원 집중 방역기간’ 운영 결과 보고회에서 "서울대학교는 5.6일부터 검사 대상자를 희망하는 학내 전체 구성원으로 확대했으며, 다른 대학교에서도 서울대 사례를 예의 주시하여 학내 선제검사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펜데믹의 창의적이 극복을 위해서라도 "대학 문을 열라"는 외침에 대해 진지하게, 또한 지혜롭게 귀 기울여야 할 때다.
[2021-05-26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