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럽지 않은 강소 기업

[기획]취난과 구직난...중소기업 모순된 현실을 보다 ③


신민호, 지윤하, 장예지, 반주희 기자 admin@example.com
11/23/2024 12:35:05 AM 등록 | 수정 11/23/2024 1:32:01 AM
기획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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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대기업이 불러도 안 갈래요” 판교에 있는 중소 소프트웨어 보안 업체에서 일하는 유 모 씨(30세·남성)가 한 말이다. 그가 다니는 회사의 직원은 30명 남짓. 규모는 크지않다. 하지만 다른 중소기업이 겪는 구인난은 없다. 이직율은 대기업보다 낮은 수준이다. 최근, 사내 변화를 통해 청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강소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기업의 99%는 중소기업이다. 전체 노동자 중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82.9%다. 하지만 청년들은 1% 대기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의 99%가 외면받는 환경에서 취업난이 해결될 리 없다. 청년들의 눈높이만을 탓할 수 없을 것. 결국 중소기업이 변해야한다.

■ 직원들의 복지는 곧 회사의 이익… 강소기업의 선순환
판교에 있는 중소 소프트웨어 보안 업체에서 일하는 유 모 씨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회사에서 워라밸만큼은 확실히 신경 써준다며 회사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야근을 제외하고는 업무시간을 엄수하는 것이 이 회사의 문화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불필요한 연락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회사 차원에서 개인연금도 지원해준다. 연봉의 3% 수준을 회사가 지원하며 개인연금 가입을 장려한다. 회사가 작은 만큼 일주일에 1시간 전 직원회의를 통해 사장에게 직접 요구사항을 건의하기도 한다. 얼마 전 생긴 통근버스도 이 직원회의 덕분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회의를 진행하며 회의를 통해 생긴 사소한 복지도 많다고 한다.

정부와 중소기업중앙회도 청년의 중소기업 복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신용등급ㆍ영업이익ㆍ위법이력ㆍ고용유지율 등 복지수준이 높다고 예상되는 중소기업을 매년 선정하고 발표한다. 구직자의 능력에 어울리는 중소기업을 연결시켜주는 플랫폼도 개발할 예정이다. 청년 재직자를 위한 정책적 지원 역시 늘어나고 있다. 2년 동안 중소기업에 근무하면 청년ㆍ기업ㆍ정부가 공동 적립해 1200만원의 목돈을 제공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제도가 대표적이다. 또 중소기업 장기재직자에 대한 주택 특별공급을 통해 주거문제를 해소하고 중소기업 복지플랫폼을 만들어 중소기업에서 부족한 복지를 메우겠다는게 정부의 계획이다.
이 회사도 처음부터 복지가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유 모 씨는 “우리 회사의 노동환경이 열악했을 때도 있었다고 들었다”면서 회사의 복지가 좋아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IT 기업의 특성상 젊은 직원들이 많이 필요한데 젊은 직원들이 자꾸 퇴사하자 회사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듣기 시작하자 퇴사율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퇴사율이 감소하자 회사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복지에 투자한 비용이 결국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젠 회사가 부끄럽지 않아요”… 수평적 문화의 강소기업
지금은 회사에 만족하고 있는 유 모 씨도 처음에는 중소기업을 다닌다는 열등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 직장 이름을 말하기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회사가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자 인식이 바뀐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대기업에 비해 적은 임금 수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우리 회사 월급이 대기업보다 적은건 사실이지만 돈이 다는 아니다”라면서 “대기업의 수직적인 문화를 생각하면 불러도 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강소기업만의 수평적 문화는 그에게 일의 동기를 제공하고 애사심을 갖게 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청년희망일자리부 관계자 역시 “임금과 복지 수준이 대기업에 비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역량을 가장 빠르게 증명할 수 있는 곳이 중소기업”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초봉만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능력을 증명한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직원 수가 적은 만큼 회사의 경영진은 직원의 능력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만큼 승진과 보상에 대한 기회가 열려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의 능력을 오롯이 평가받고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중소기업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체계 구축, 중소기업 인식 변화의 첫걸음
여전히 중소기업에 대해 청년들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임금ㆍ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격차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인식이 아닌 사실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소기업 정규직의 급여 수준은 대기업 정규직의 57.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 간 격차 역시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복지 비용 지출 비율은 39.7%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임금, 복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소기업의 청년들은 기업인에 대한 문제도 지적한다. 청년들은 기업인들이 기업을 사유화하고 이익을 독점한다며 비판한다. 또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면 자식과 친척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회사의 중요한 자리에 배치한다고 지적한다. 부족한 체계 역시 중소기업에 다니기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취재팀이 만난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이 모 씨는 “구체적인 시스템이 없다 보니 업무를 제대로 하는 건지 답답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인의 기업 사유화 문제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기업의 사유화는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혈연에게 기업을 상속하거나 소위 ‘낙하산 인사’를 하는 것은 대기업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고 체계가 없어 이른바 ‘갑질’에 대해 고발 통로가 없지 않냐는 지적에는 인정하며 “이에 대해 중소기업이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중소기업도 최근 구인난을 겪으며 많이 변화하려 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발상을 전환하라... ‘당신은 회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 취업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뚜렷한 전문성이나 체계없이 개인이 너무 많은 분야의 일을 해야한다고 비판받지만 바꿔말하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업무경험을 축적할수 있게 만든다”며 “청년들이 발상의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청년으로 중소기업에 들어와 다양한 능력을 쌓고 창업을 하는 젊은 기업인들이 많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대기업에서는 회사의 주연이 되기 어렵지만 중소기업은 회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곳임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취재팀이 만난 강소기업 직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회사에 계속 남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에서 했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이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소기업에 다니는 유씨에게 중소기업 취업을 고민하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중소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중소기업도 최근 IT 기업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중소기업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021-06-1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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