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의 자격...시민의 권리
[기획] 지역인재 의무채용, 이대로 괜찮은가 ①
이혜인 admin@example.com
11/23/2024 12:39:23 AM 등록 | 수정 11/23/2024 2:04: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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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학 학생과 지방대 학생의 갈등을 유발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력 대비 정당한 결과가 있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입니다. 의무 채용 제도는 노력한 사람이 손해보는 정책이라고 봅니다.”
수도권 대학에서 재학 중인 강OO씨의 발언이다. 강씨는 “제가 지방인재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 제도로 취업에 실패한다면 엄청난 불이익입니다”라고 전했다.
지역인재 의무채용제도는 지방대 육성법의 하위 조항이다. 제도를 통해 지역대학 학생들의 공기업 취업 기회를 넓히고 지방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반대하는 정치권과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도의 공정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 제도의 배경은? ‘지역 대학의 위기 현실화’
지방대학 육성법이 지난 3월 개정됐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신규채용인원의 30%를 지역인재로 채용해야 한다. 지역인재는 지방대학의 재학생 또는 졸업생을 의미한다. 지방대 육성법은 최근 불거진 지방대학 정원미달현상과 관련이 있다. 원서접수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대학의 미달인원은 6812명(18개 대학)으로, 재작년 미달인원 491명의 14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수도권 선호현상,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인한 지방대 몰락 위기가 현실화된 것이다.
▲ 지역인재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선순환 기대
국토교통부는 지방대 육성법을 통해 지역인재와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인구유출을 막고 지역의 경제기반인 대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지역인재 의무채용제도 시행 3년차인 2020년 전국 12개 혁신도시에 입주한 109개 공공기관은 4129명을 신규 채용했다. 이 중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를 적용해 선발한 인원은 평균 28.6%, 1181명이다. 조동용 전북도의원은 “혁신도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이 늘어나야 젊은 층들이 출생지에서 배우고 정착하는 선순환이 자리잡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은 어떨까. 제도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학생들이다. 출신지역과 출신대학을 기준으로 4명에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각각 ▲수도권 출신 수도권 대학생 ▲수도권 출신 지방대학생 ▲지방 출신 수도권대학생 ▲지방 출신 지방대학생이다.
▲ 수혜여부에 따라 극명한 온도차
수도권 대학생들은 제도의 방향성에 고개를 저었다. 강씨는 "보통 학생들은 전국의 지원자들과 경쟁합니다. 하지만 지방 인재의 경우 해당 지역의 같은 지방 인재와 경쟁하기만 할 것입니다. 제가 지방인재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 제도로 취업에 실패한다면 엄청난 불이익입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쟁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을 맡았던 황도수 교수는 지역인재 의무채용제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인재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취직의 기회에 제한을 받는다. 황교수는 제도가 개인의 권리를 과하게 제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역 대학에 재학중인 김씨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수도권 집중"이라며 "어떤 방법으로든 수도권 집중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씨는 사회적 의의에 주목했다. "의무 채용제도는 지방 대학의 소멸을 막고 지방대 학생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배씨는 "비율에 맞춰 선출됨으로,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능력을 향상시켜 업무에 임하려는 자세가 생긴다"는 의견도 전했다.
학생들은 채용의 대상이다. 채용의 주체는 공공기관의 인사 담당자다. 한국노동연구원은 17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지역인재 의무채용제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 채용기관, 제도에 회의적
응답자의 40.5%가 지역인재 채용에 대해 애로사항을 느낀다고 밝혔다. 기관마다 여건이 다르다. 지역 내 소재 대학의 숫자 및 졸업생의 수가 달라 30%를 채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수혜 대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났다. 응답자의 72.9%가 현행 제도의 수혜대상 설정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개인의 선택에 주목했다. 대학을 결정한 것은 개인의 선택인데 국가가 우대하는 것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제도가 절차적 공정성을 제고하느냐는 물음에도 회의적이었다. 53.2%가 보통이라고 답했으며, 37%가 낮다고 답했다. 제도가 절차상 공정성에 기여한다는 응답은 9.8%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제도의 수혜여부에 따라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채용기관도 회의적이다. 국회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 외에도 김윤덕, 김회재 등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확대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에서는 강력한 반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SNS에서 “공정은 아예 쓰레기통에 내버렸냐”고 반문했다. 그는 “능력과 실력 대신 불공정 채용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취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수도권 집중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사회적 비용을 근거로 제도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섣부른 이유다. 경제학자 김대환 교수의 말처럼 “뭔가가 해결을 해줘야 한다”. 비대해진 수도권의 기능을 나눠야 한다. 공공기관, 민간기업, 지방대학 혹은 지역인재 의무채용제도. 이들 중 무엇이 됐건 수단이 정의로운지 또한 따져볼 일이다.
[2021-06-1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