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균형 실체 없이 고통 남기는 환상통


이혜인 기자 admin@example.com
11/23/2024 12:44:31 AM 등록 | 수정 11/23/2024 2:04:52 AM
기획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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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이라는 감각이 있다. 이미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 신체에서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다. 이렇듯 고통이 주는 충격은 실체가 사라진 후에도 오래 지속된다. 실체가 없음에도 그 감각은 생생하다.

공동선이라는 감각은 개인의 이익이 보장될 때 비로소 실체가 된다. 내가 있어야 우리가 있다. 공동체가 나를 뒤로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역인재와 ‘비’지역인재의 경계에서 공동체의 감각은 사라진다. 수도권 대학 학생들은 지역 학생들이 채워지고 남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침해된 것이다. 공기관을 준비하는 학생은 지역에 위치한 대학을 고려하게 된다. 학습권이 침해된다는 지적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균형발전의 논리 앞에서 헌법의 평등원칙이 무색해졌다.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대학은 학문을 위해서 존재할 뿐, 지역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할당제는 잠정적 우대조치에 해당할 경우에만 허용된다. 헌법재판연구원은 잠정적 우대조치를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집단에게 실질적 평등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한시적 차별대우’ 라고 정의한다. ‘차별 받아온 집단에게 적용하는 한시적 제도’임을 주목해야한다. 차별이 해소되면 우대조치는 끝난다. 블라인드 채용제도가 병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인재를 우선 할당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블라인드 채용제도 안에서도 지역 대학생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일까. 혹은 수도권 대학생들에게 ‘너희들의 신분은 역사적 가해자로서 부당한 이익을 누려왔으니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해야 할까.

지역인재 의무채용제도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을 따른다. 결국 지역인재 의무채용제의 지향점은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지역 대학의 선호도를 높이고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의도했다. 이러한 유인책만으로 지역간 격차를 해소하는데 한계가 있다. 김대환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의 일자리공급이 그대로인데 지방대학의 수요가 늘어난다고 경제적 불균형이 해소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작년 지역인재 의무채용제도로 선발된 인원은 전국에서 1181명에 불과하다. 결국 민간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기업의 지방이전 현황은 어떨까.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약 900개의 기업이 국토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이전했다. 조세법은 이전기업에게 3년간 법인세 100% 감면, 이후 2년간 50%를 감면하고 있다. 법인세 감면으로 지난 5년간 3조 5천 억원이 사용됐다. 문제는 이들 중 80%가 경기, 인천지역으로 이전하고 조세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집중도는 거의 변화가 없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지난달 3일 중소기업 약 2000개사에 지방이전 의견을 물었다. 55%가 지방이전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이전 고려지역의 83%가 비수도권이라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들이 지역이전 시 가장 원하는 혜택은 이전지원금이다.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현행법에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법인세 감면은 기업이 이전한 뒤의 일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당장 이전할 비용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혜택은 인건비 지원이다. 응답업체의 85%가 지역이전 시 ‘인력을 더 뽑겠다’고 말한다. 채용인원을 늘리면 지역의 일자리 창출 및 지역대학과의 산업연계가 가능하다. 중소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항은 입지조건 및 교통 인프라이다. 법인세 감면규모를 줄이고 이전지원금, 인건비 지원, 교통 및 인프라 개선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때다.

균형발전은 늘 성장과 분배의 논리를 따른다. 부동산 폭등, 지방의 소외의식, 지역 간 양극화 심화는 분배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문제는 지방대 육성법이 기본권을 분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데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와 학습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헌법은 국가가 국민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분배의 대상은 권리가 아니라 세금이다. 기업이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대담하게 투자해야 한다. 지역 학생의 ‘머릿수’를 채우는 게 아니라 ‘능력을 키워야 한다. 황 교수는 ‘지방대학의 교육 질을 향상하지 않고 쿼터제를 내버리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꼬집었다. 권리에 대한 분배는 지나치고 경제적 분배는 빗나간 것이다.

“11개 공공기관이 입주한 경남혁신도시는 지역 대학생들에게 보물섬과 같은 곳이다”. 경남지역 대학생들의 발언이다. 경남혁신도시가 조성된 뒤 지역 대학생들은 연간 수십 명씩 LH 등 입주 공공기관에 입사하는 혜택을 받아왔다. 수도권 대학생들은 지역 학생들의 보물섬에 발조차 들일 수 없다. 공공기관 입사에는 선명한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다. 이들이 ‘국가 균형적 발전’이라는 공동선에 공감할 수 있을까. 애초에 ‘개인’ 없이 ‘공공의 가치’가 존재할 수 있을까. 기계적 균형은 상처를 남긴다. 실체 없이 고통을 남기는 환상통은 아닌가.

[2021-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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