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저임금 노동자 취급하는 기업
“스펙 줄게 일해다오”...꿈을 향한 청년들의 도약 정당한 대우를
은형경 채은한 이지우 기자 admin@example.com
11/23/2024 12:54:36 AM 등록 | 수정 11/23/2024 12:56:10 AM
기획
경제
“청년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대학생 H양은 지금까지 다양한 공모전, 서포터즈 등의 대외활동에 참여했다. H양은 마케팅 직무로 취업하기 위해 학업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그리고 콘텐츠 제작 대외활동까지 병행했다. 가끔 높은 강도의 과제들이 주어질 때가 있어 식사 시간과 수면 시간을 줄이면서 열심히 참여했으나 돌아온 것은 한 장 짜리 대외활동 인증서 뿐이었다. 처음에는 스펙 쌓기가 제일 큰 목적이었기에 괜찮았지만 이후 본인의 콘텐츠 결과물이 기업 SNS 페이지에 활용되는 것을 보고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현재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직무 유사경험’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4년 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규 채용 시 기업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직무 관련 업무 경험’으로 전체 응답 중 74.6%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희망 직무의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는 대외활동을 위해 과제, 시험 준비, 아르바이트로 이미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끝 없는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이런 청년들의 ‘열정’에 ‘열정페이’로 답했다.
H양은 “스펙을 쌓기 위해 무급노동을 자처하는 청년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며 자신 외에도 주변친구들이 이용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0명 중 51명이 대외활동 경험이 있었으며, 이중 64.7%가 ‘대외활동 참여 도중 혹은 참여 후에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작업물에 대한 건당 보수가 필요하다’거나 ‘해당 기업 지원 시 가산점을 주는 등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맞는 메리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며 대외활동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도록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모았다. (대학생 대외활동 경험에 관한 설문조사, 60명 응답)
기업들이 청년들의 열정을 저렴하게 이용하는 행태는 대외활동 뿐 아니라 기업 인턴에서도 찾을 수 있다. 향후 마케터가 되기를 꿈꾸는 C양은 지난해 2개월 간 모 기업 마케팅 관련 부서에서 인턴을 경험했다. 실무를 많이 경험할 수 있다는 업무계획서를 보고 지원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업무시간 동안 계약 시 협의되지 않은, 전화 응대 업무를 도맡아야 했으며 계약 시 받기로 한 임금보다 적은 금액을 받았다. C양은 인턴은 그저 저임금 노동자에 불과한 것 같다고도 느꼈다며 “인턴 직위가 사내에서 낮은 위치이고 단기직이기에 중요한 업무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사원이 아닌 인간으로서 부당 하다고 느껴지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화장품 브랜드 5년차 웹디자이너 J양 역시 인턴을 저임금 노동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J양은 “인턴들은 평소에 잡일만 하고 밥을 따로 먹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며,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값싼 저임금 노동자인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수습기간에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잡일이 많아 정직원보다 땀 흘려 일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아 인턴들이 불쌍했다”고 덧붙였다.
기업을 대상으로 스펙이 절실한 청년들을 정당한 보상 없이 이용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러나 대외활동은 ‘노동’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기에 처우와 관련한 법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에서 청년들의 열정페이는 계속되어왔다. 인턴을 보호하기 위한 <열정페이 근절 가이드라인>이 지난 2016년 발표 되었으나 해당 가이드라인은 인턴의 지위, 교육훈련 포함 여부 등에 주로 조건을 맞췄다. 저임금을 받으며 정규직 사원과 같은 양의 업무를 맡고, 3-6개월 단기간 근무 후 퇴사해야 하는 등의 인턴의 ‘진짜 비애’는 들여다보지 않은 정책이었다. 기업의 인턴 채용과 관련하여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인턴 제도를 통해 어떤 채용 계획을 갖고 있는지 공시하는 내용도 지침에 담을 필요가 있다”며 “6개월 인턴 후 기업이 어떤 절차, 어떤 규모로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인지 제시해 청년들이 취업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노동부는 인턴을 보호하기 위한 6가지 기준을 내세운다.
첫째, 인턴업무가 고용주 사업체의 실질적 운영과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교육적 목적에서 제공되는 교육 훈련적 성격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인턴업무는 인턴들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인턴이 정규직을 대체해서는 안 되며 직원에 의한 면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 넷째,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고용주들이 인턴활동으로부터 직접적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되며, 때로는 자신들의 업무가 인턴교육으로 지체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다섯째, 인턴의 업무가 종료된다고 해서 인턴이 반드시 채용되는 것은 아니며, 여섯째, 고용주들과 인턴 양측은 인턴기간 동안 임금이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해당 기준은 미국 내에서 인턴을 값싼 노동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처리하게 될 업무를 교육 받으러 온 훈련생으로 대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턴제도가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미국을 무작정 따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청년들의 열정이 ‘열정페이’가 아닌 정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노동과 맞먹는 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고, 정규직 수준의 업무를 맡을 인력이 필요하다면 인턴을 경험한 후 정규직 채용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학습과 반복을 통해 뛰어난 인재로 성장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당장의 필요에 따라 청년들을 그저 이용하기만 한다면 누가 회사에 열정을 갖고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청년들의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노력에 합당한 대우는 결국 기업의 미래 자산에 대한 투자라 할 수 있다.
[2024-06-1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