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ROTC...'1급 멸종 위기종'
ROTC 지원율 급락… 군의 허리가 끊어져
김슬기 최윤혁 최인서 기자 admin@example.com
11/23/2024 1:23:40 AM 등록 | 수정 11/23/2024 1:25:56 AM
뉴스
사회
대학교 곳곳에 붙은 ROTC 홍보 포스터에는 ‘국가대표 대학생’이라는 문구가 있다.
ROTC를 지원하는 것이 남들보다 앞서가는 선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멋진 제복을 입고 007가방을 드는 이들을 보면 한 번쯤 ROTC를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선망의 대상이었던 ROTC 지원에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108개 대학의 ROTC 선발에서 절반이상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학군단이라고도 불리는 ROTC는 사관학교 4년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장교가 될 수 있다. 3학년 이후 방학에만 군사훈련을 받고, 학기 중에는 학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10년 전 전국 대학교 ROTC 경쟁률은 6.1:1을 기록하며, 인재를 선별하는 촘촘한 거름망이 존재했다. 시간이 흐르고 거름망의 크기는 넓어졌다. 지난해 경쟁률은 1.3:1수준까지 떨어졌다. 10년 만에 경쟁률이 폭락한 것이다. 육군 학군단을 운영하는 전국 108개 대학 가운데 54곳은 후보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국가대표 대학생’이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다.
대학 교정에서 만나는 ROTC의 우렁찬 경례 소리, 각 잡힌 제복, 007가방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계급은 내가 더 높은데…”통장 보면 한숨만 나와”
군대는 의무복무 계급인 ‘병사’와 본인의 선택으로 복무하는 ‘간부’ 계급으로 나뉜다. 병사보다 많은 봉급은 간부의 장점 중 하나다. 병사 봉급이 급격히 늘어나는 동안, 간부 봉급은 변하지 않았다.
올해 병장 봉급은 125만 원까지 올랐고, 내년에는 더욱 올라 150만 원에 달한다. 하사, 소위 등 군 경력이 길지 않은 초급간부의 첫 봉급은 180~190만 원 선에 머물러 있다.
매월 나오는 군인장병내일준비적금 정부지원금 40만 원(내년 55만 원)을 더하면 병사의 봉급이 간부보다 더 높다. 이러한 봉급 역전 현상은 초급간부의 회의감을 증폭시켰다.
밤을 새우는 당직 근무자에게 주어지는 수당은 평일 2만 원, 주말 4만 원이다. 병사와 달리 간부는 식비가 제공되지 않는다. 2끼 식사 비용 9000원이 깎이면 평일 밤샘 근무 뒤 남는 돈은 고작 11,000원뿐이다.
당직비를 포함한 기본적인 수당 지급이 수개월에서 수년째 밀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내부에선 임오군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ROTC 전역 후가 막막해” 취업시장에서 맞닥뜨리는 장벽
젊은 나이에 장교로서 조직을 이끈 경험이 있는 ROTC 전역자는 기업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많은 회사가 특별채용 전형을 열거나, 가산점을 주며 ROTC 출신들을 뽑아갔다. 2011년 삼성그룹 14개 계열사는 ROTC 특별선발 제도로 300명 이상을 선발했다.
ROTC는 점점 취업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인턴을 비롯한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지금, ROTC는 더 이상 장점이 아니다. 수시 채용이 대세가 되면서 기업들은 ROTC 특채를 없애기 시작했다. 2021년 기준 ROTC 특채는 삼양그룹, 효성그룹뿐이며 올해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ROTC 전역자 A 씨는 인터뷰에서 “ROTC 혹은 전역 장교들을 우대 채용하는 기업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모 대기업의 경우는 ‘SKY’ 대학교 학군단에만 별도로 특채를 진행했다.
군 생활 중 취업 준비도 쉽지 않다. A 씨는 “다른 취준생들이 스펙을 쌓는 동안 ROTC 후보생들은 학기 중과 방학 때도 각종 훈련과 교육에 참여해야 했다”며 “졸업 후 복무 기간에도 당직, 훈련, 파견 등 일이 많아 취업 준비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전역 후 취업 지원도 부족하다. 군에서 마련한 전역 장교 취업 박람회나 지원 커리큘럼이 있으나, 부대 일이 바쁘면 참석하기 어렵다. 그마저도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모집은 안 되는데 전역은 늘어나고… “군대가 소멸하고 있다.”
낮은 봉급과 취업 문제는 ROTC를 포함한 초급간부 전체를 괴롭히고 있다. 버티다 못한 초급간부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해에만 9,481명의 간부가 군을 떠났다. 전년에 비해 24.1%p 증가한 수치다. 이는 사단급 규모의 간부가 증발한 것과 같다.
육군 전역 지원서 접수 담당 군무원 B 씨는 “올해 초급간부들의 전역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다간 군대가 소멸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대 전투력을 ‘창’으로 비유하자면 초급간부는 ‘창끝’을 담당한다. 우리 군의 실질적인 전투력인 초급간부가 대거 군을 떠난 것은 국방의 근간을 흔드는 유례없는 일이다. ROTC뿐 아니라 초급간부 전체의 처우를 개선하는 총체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제2 임오군란'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군인에게 압도적인 복지 필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에 따르면, 24시간 상시 근무 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공무원은 ‘현업공무원’으로 지정할 수 있다. 소방·경찰관은 현업공무원으로 초과 근무 수당에 제한이 없다. 군인은 현업공무원에 포함되지 않아 4시간을 초과한 근무는 보상받지 못한다.
육군 대위 출신 태재연구재단 선임연구원 김세진은 “군인을 현업공무원으로 지정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금전 보상을 받도록 해줘야 한다”며 “가족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아야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도 생겨난다.”고 밝혔다.
간부들을 위한 현실적인 취업 지원책도 시급하다. 군과 민간에서 필요한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고, 군 경력을 민간에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전역 예정 초급간부들을 대상으로 ▲취·창업 지원책 소개 ▲금융/투자 교육 ▲선배와의 대화 등을 통합한 정착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에, 사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이제는 국민들이 나설 차례다. 정부·의회·기업·대학이 합심하여 초급간부들의 처우를 위한 대대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2024-06-1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