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청년고독사, 사회가 청년 지켜야
복지 사각지대 청년들 고독사에 무방비로 노출
김윤희, 백혜진, 임정은 기자 admin@example.com
11/22/2024 11:58:37 PM 등록 | 수정 11/22/2024 11:59:17 PM
기획
사회
8월 작은 월세방 한칸에는 부탄가스통과 소주병 수십개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지나 부패한 음식물이 쌓여 있었다. 오랜기간 방치된 방에는 행복과 미래를 다짐하는 메모들도 함께였지만 그 꿈은 결국 이뤄질 수 없게 됐다. 이 방에서 청년이 숨졌다. 청년 고독사였다.
고독사란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죽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고독사는 명확한 정의가 없는 신조어에 불과했고, 자살이나 타살은 제외돼왔으나 최근 들어 청년 고독사가 늘어나면서 자살의 경우도 고독사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방송과 언론의 조명을 받아왔던 것과는 달리 청년 고독사 비율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가 청년 고독사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청년 고독사 발생 건수는 4196건으로 2013년에 비해 2.5배나 늘었다. 청년 고독사가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젊은 청년들의 고독사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가장 빨리 실감한 것은 특수청소업체다. 특수청소업체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 안을 청소하거나 이사 후에 남겨진 폐기물 처리 혹은 화재 및 범죄 현장 청소, 악취 제거, 고인의 유품을 정리 및 배송 그리고 사람이 사망한 현장을 정리, 처리 및 소독하는 일을 담당해왔다. 이제 그들에게 청년 고독사도 단골 현장이 됐다.
특수청소전문 A업체의 이모씨는 '요즘은 대부분이 청년 고독사 현장'이라며 '청년들은 제도의 보호를 받는 노년층에 비해 늦게 발견되고 오랫동안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냄새가 심하다'면서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모씨가 방문한 현장 중에는 150여장의 이력서로 가득한 방도 있었다. 31세 청년이 여섯 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홀로 외롭게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청년고독사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있지만 국가적 차원의 실태조사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청년 고독사의 정확한 원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의 붕괴,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이영란 교수는 ‘단순히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취업난이 늘어나 청년 고독사 비율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1차적 보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가정의 붕괴나 형태 다변화, 개인주의의 만연, 우울감 방치 등 여러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주된 원인에 대한 진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족의 붕괴 현상을 막을수는 없지만 사회와 지자체가 적극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30 청년 238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전체의 65%인 154명은 스트레스 자가진단 검사에서 19점 이상으로, 전문가와의 상담이 권고되는 강한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했고 40점 만점 중 30점이 넘는 사람도 22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절반 이상이 고립되거나 혼자라고 느끼며, 우울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하는 한편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응답도 무려 28.5%에 달했다. 청년 네 명 중 한 명은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숙명여대 재학생 박수연 씨는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껴 학교 상담센터를 찾았지만 상담 신청자수가 너무 많아 상담을 받을 수 없었고 사설 상담센터의 비용이 부담스러워 상담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는 진료 기록이 남아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 차마 방문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청년 우울 문제에 대해 숙명여대 총학생회 비대위원장 이윤서 씨는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마음 건강을 돌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이미 취업준비나 학업 문제로 우울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은데, 상담센터나 학교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라며, “사실상 대학과 사회가 학생들의 마음건강을 방치한 결과가 청년고독사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4월부터 무연고 사망에 대응하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고독사예방법)이 이미 실시되고 있지만, 법의 안전망에도 청년은 당연하듯 제외되었다. 청년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계 공동행동의 박주연 대표는 “대부분의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은 노년층에 맞춰져 있고 청년 1인 가구는 젊고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시스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며 고독사 예방법에 청년이 포함돼야 함을 강조했다.
청년고독사가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피켓시위를 진행해오고 있는 전국청년네트워크 청년너울 대표 마재광씨 또한 “고독사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노년층에게만 집중되고 있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청년들은 고독사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며 지자체의 정책을 촉구했다. 마 씨는 청소년에게 지원되는 이동식 심리 상담소를 청년 층에게도 확대 지원하고 일부 지자체나 복지시설에서 진행하고 있는 노년층 대상 안부전화 시스템도 청년층에 도입해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내지도 못하고 쌓여갔던 청년들의 이력서는 이제 더이상 청년 고독사는 개개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대의 해결 방안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2022-06-0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