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전문직만...‘계급소개팅’ 인기
소개팅 앱으로 강화되는 우리 사회 양극화
김규리, 우지원, 안유정 기자 kims4all@gmail.com
3/15/2025 8:52:28 PM 등록 | 수정 3/15/2025 9:02:12 PM
기획
사회

“강남에 자가를 보유한 사람에게만 되도록 좋아요를 눌러요. 처음에는 학력이나 재산 같은 조건이 안 중요했는데,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면서 더 신경 쓰게 됐어요.”
소개팅 앱 ‘다이아매치’ 이용자 20대 여성 이수정(가명)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앱에 접속해 다른 사용자를 탐색한다. 상대방 프로필을 클릭한 후 먼저 보유 자산과 학력을 확인한다. 이 씨는 “원래 나는 스펙만을 따지는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소개팅 앱의 랭킹 시스템으로 인해 점수가 높은 사람을 계속해서 찾게 됐다”고 주장했다.
◇ 사람을 검증하는 프리미엄 소개팅 앱
이 씨가 사용하는 ‘다이아매치’ 외에도 ‘스카이피플’, ‘골드스푼’ 등 높은 경제력과 학력 등을 가입 조건으로 요구하는 스펙 기반 소개팅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스펙 기반 소개팅 앱은 가입 시 사용자에게 졸업증명서, 재직증명서 등을 요구하고 자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에게만 가입을 허용한다. 까다로운 가입 절차에도 불구하고 ‘스카이피플’은 올해 가입자 수 52만명을 기록했다.
이러한 소개팅 앱은 ‘검증된 남녀를 위한 품격 있는 소개팅’, ‘검증 기반 하이엔드 데이팅앱’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타 서비스와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철저한 회원 관리를 바탕으로 앱을 운영하면 고객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 양극화와 학벌주의 강화 우려
그러나 사람 검증에 초점을 둔 소개팅 앱이 사회의 양극화와 학벌주의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학 등급과 연봉에 따라 개인에게 점수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기이하다는 시각도 있다.
계급 시스템은 높은 등급에 속하지 않은 사용자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씁쓸함을 안긴다. 연애를 하고 싶어 데이팅 앱에 가입한 20대 남성 최재윤(가명) 씨는 랭킹 시스템의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하고 열등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최 씨는 “소개팅 앱이 사람 자체를 보기보다는 스펙, 외모 등 외적인 요소로 사람을 판단하기에, 괜한 자격지심이 느껴졌다”고 말하며 “취업 시장처럼 연애도 합불이 있는 거 같아 슬프다”고 고백했다.
학벌과 경제적 능력을 입증하는 남성 사용자와 달리 여성은 외모를 주요 조건으로 본다는 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여성은 외모, 남성은 경제력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 속에서도 스펙 기반 소개팅 앱이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취재팀은 설문조사를 통해 다수의 의견을 취합해 보았다.
◇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소개팅 앱 사용 현황
지난 2일부터 2주간 연세대학교 재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소개팅 앱 사용 현황과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응답자 50명 중 35명이 앱 사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중, 약 69%가 연애를 목적으로 앱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소개팅 앱을 통해 연애하는 사회적 현상은 우리 대학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앱 사용 장점으로 편리함을 꼽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상대방 정보를 사전에 얻을 수 있다는 점과 자신과 다른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줄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고자 하는 ‘분초사회’ 트렌드가 연애 시장에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앱 사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71%는 연픽, 다이아매치 등 특정 스펙을 가진 사람만 가입이 가능한 앱을 사용했다고 답했다. 이유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학벌, 직업을 가진 고스펙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실제로 앱을 통한 연애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지인 소개에 비해 소개팅 앱의 사용이 상대방 조건을 부담 없이 따질 수 있어 편리하다고 밝혔다.
◇ 랭킹⬝점수 시스템의 부작용
이러한 요구에 따라 대부분의 앱이 랭킹 및 점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설문조사에 따르면 앱 사용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60%가 랭킹 및 점수 시스템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응답자들은 앱 내 시스템을 통해 정해진 자신의 점수와 랭킹 때문에 원하는 사람과 매칭이 불가능해 자신의 점수와 랭킹에 불만을 느낀다고 답했다.
랭킹 및 점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소개팅 앱의 부정적 인식과도 연결된다. 소개팅 앱에 대한 인식 문항 (5점 만점, 만점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에 평균적으로 앱 사용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2.1점, 앱 사용 경험이 없는 응답자는 2점이라고 답했다. 사용자 요구에 따라 도입한 시스템이 도리어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그 외에도 과도한 보정이 된 프로필 사진, 일명 ‘프사기’나 ‘범죄 위험’ 등이 부정적 인식의 원인으로 꼽혔다.
소개팅 앱이 만들어낸 서열화는 사람들 간 비교를 부추기고 우울감, 열등감 등 부정적 감정을 형성한다. 일부 응답자는 설문조사에서 ‘스펙 기반 소개팅 앱을 사용하며 자존감이 떨어졌다', ‘어플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박탈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현상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이지훈 교수는 "랭킹 시스템은 사용자의 선택을 돕기 위한 도구이지만, 지나치게 스펙 중심으로 구성될 경우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앱 안에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며 "이는 오히려 사용자의 자존감을 저하하고 건강한 관계 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랭킹 시스템, 잘 활용하면 긍정적 효과도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귀국한 30대 여성 황은교 씨는 스카이피플을 통해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이다. 황 씨는 "검증된 직장과 신분을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앱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황 씨는 귀국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만남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개팅 앱을 1년간 사용했다. 그는 "온라인이라 외적 조건과 스펙을 우선으로 보게 되지만, 이런 시스템 덕분에 나와 비슷한 조건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앱의 랭킹 시스템을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며 앱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 소개팅 앱의 부작용 해소 방안
전문가들은 스펙 기반 소개팅 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펙 외의 다양한 요소를 평가 기준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격 테스트, 취미, 가치관과 같은 정성적 요소를 매칭 알고리즘에 반영해 스펙에 국한되지 않는 만남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기반 매칭 전문가 김도연 박사는 "AI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의 취향이나 가치관을 분석하고, 이를 매칭에 반영한다면 스펙 중심의 서열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랭킹 시스템 자체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랭킹 점수 산정 방식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거나,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 설계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지훈 교수는 "사용자에게 랭킹 점수가 형성되는 과정을 명확히 설명하면, 불필요한 불신을 줄이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하며 “또, 하위 랭킹에 속한 사용자를 배려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상호 익명성을 보장하거나, 사용자의 랭킹 점수가 아닌 개인 프로필의 개별 요소를 강조하는 방식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